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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l we have faces, we cannot love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를 열면 제일 먼저 저자 서문 전에 세익스피어의 소네트 151편의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사랑은 너무 어려 양심이 무엇인지 모른다네.’ Love is too young to know what conscience is 이 책에서 C.S.Lewis가 프시케 신화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을 잘 드러내는 문장입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프시케의 언니 오루알입니다. 오루알이 사랑을 통해서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저자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인간이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집착하거나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그것은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의 표현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통제하는 것으로 나타탑니다. 오루알은 프시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동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프시케가 신과 사랑하려고 하자 그것을 방해하고 마침내 파괴하였습니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는
엄태우 목사
4월 20일
부스러기의 은혜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마15:27] “부스러기의 은혜라도 받겠습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은 모두가 이럴 것이다. 딸이 낫기만 한다면 사람들의 시선이나 체면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개라고 불리는 모욕적인 말 앞에서도 괜찮을 것이다. 이 어둠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예수님임을 확신했던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나도 절박한 마음으로 그분의 발치에 엎드린다. 나에게 예원 예준 예성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라는 질문은 마치 이방 땅에서 터져나온 수로보니게 여인의 절규와도 같았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이 마치 우리 아이들이 세상 아이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공부하는 것과 같았고, 여인으로서 낯선 유대인 남자에게 다가갔던 그 용기는 혈루병 든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잡으면 나을 수 있다는 간절한 마음과도 같았다. 예원 예준 예성이가 내 것이냐 주님의 것이
주유연
4월 2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