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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와 즐거움은 상호보완적이다
“사람들은 우리 소비사회를 비판하면서도, 생각보다 훨씬 철저하게 소비사회를 길들여져 있다. 소비사회의 신조,즉 생산성이 그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다. 생산성이 삶에서 모든 것을 뜻하는 것인 양 그들은 생산성 향상에 몰두한다. 게다가 현대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주변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노동과 생산 및 생산성에 기반을 둔 가치 시스템’의 상속자들이다…” 결국 ‘진정한 노동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의미를 묻는데 까지 오고 말았다. AGI의 시대에 진입하며 미래를 누구도 장담할 수 있는 일자리 문제 앞에 인간은 과연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와 같은 근본적인 물음부터 시작하여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치열하게 찾아야 한다.이런 의미에서 누가복음의 복음처럼 지금 웃느니 우는 자가 복되다. 우는 것이 답은 아니지만 그래도 울기 때문에 답을 찾으려는 시도에
엄태우 목사
4일 전
仁美가 다 해봤는데…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옷을 직접 골라 사 입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디자인만 보고 샀다가 후회하기도 했고, 몇 번 입지도 않을 옷을 사 오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물건을 고르는 눈이 생겼다. 등산 배낭도 여러 개를 써 보았다. 등판이 떠 있는 배낭은 시원했지만 수납력이 아쉬웠고, 가방이 작으면 토르소 조절이 되지 않았다. 착용감이 좋으면 무게가 무거웠고, 가벼우면 무게를 어깨로만 지탱해야 했다. 사고 팔기를 반복하며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완벽한 제품은 없다는 것. 늘 하나쯤은 부족했다. 러닝화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사람의 후기를 읽고, 공신력 있는 러닝화 랭킹 사이트를 찾아보고, 러닝 고수들의 의견을 참고하며 몇 켤레를 신어 보았다. 하지만 푹신하면 발목이 흔들렸고, 단단하면 발바닥이 아팠다. 카본 플레이트가 들어간 신발은 추진력은 좋았지만 무릎에 부담이 오기도 했다. 역시 완벽한 신발은 없었다. 난 미술을 전공해서 그런지 늘
박인미
4일 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