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l we have faces, we cannot love
- 엄태우 목사
- 4월 20일
- 2분 분량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를 열면 제일 먼저 저자 서문 전에 세익스피어의 소네트 151편의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사랑은 너무 어려 양심이 무엇인지 모른다네.’ Love is too young to know what conscience is
이 책에서 C.S.Lewis가 프시케 신화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을 잘 드러내는 문장입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프시케의 언니 오루알입니다. 오루알이 사랑을 통해서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저자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인간이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집착하거나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그것은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의 표현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통제하는 것으로 나타탑니다.
오루알은 프시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동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프시케가 신과 사랑하려고 하자 그것을 방해하고 마침내 파괴하였습니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는 내가 누구인지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얻기 위해서 소크라테스가 말한 ‘무지의 지’를 얻어야 합니다. ‘나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구나.’
오루알을 통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는 너 없이 살 수 없어.’가 사랑이 아니라 의존이요 자기 욕망인 것을 C.S. Lewis는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얼굴을 찾는다는 것은 내가 사랑한다고 믿고 말하던 것이 실제로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요, 이기적인 마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고통스러운 내적 붕괴를 경험하는 일입니다. 오루알은 평생 자신은 동생을 사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이 드러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삼키려 했다.”
그가 신 앞에서 자신의 고소문을 읽으면서 이런 자신의 내면을 깊이 성찰하게 되는 것은 마치 하박국서의 말씀과 같습니다.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신화는 정말 신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깊은 내면의 이야기들을 신들의 네러티브를 차용하여 들여다 보게 만듭니다. 프시케의 신화를 통해서 저자는 온전한 사랑이란 상대를 ‘내 것’으로 두려는 것에서 벗어나 상대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에 이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루알은 마침내 프시케를 놓아주며 그의 의식이 ‘왜 나에게서 프시케를 빼앗았는가’에서 ‘그녀는 원래 신에게 속해 있었다’로 변화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랑은 상대를 사랑함으로 내 속에 있는 죄라는 모순을 발견하게 하여 하나님을 깨닫게 하며 마침내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이 바로 내려 놓는 사랑입니다.
육신에 속한 사랑은 소유하려고 합니다. 결과는 파괴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자신을 성찰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죄를 인지하게 됩니다.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회복과 완성의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오루알은 세 사람을 사랑합니다. 먼저는 프시케를 사랑하는 것은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 주변에 흔한 일인데 상대를 내 세계 안에 가두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것이 가장 위험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미워하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너를 위해서’라는 사랑입니다. 또, 오루알은 여우선생을 사랑합니다. 이것은 이성적인 사랑을 보여줍니다. 사랑은 이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루알은 신의 세계를 거부하며 그 이유가 비합리적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한계 안에서 사랑을 이해하려는 태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루알은 바르디아를 사랑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소비하는 사랑입니다. 필요에 따라 반응하며 상대의 감정과 상황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소비하는 사랑은 결국 자신을 공허하게 만듭니다.
C. S. Lewis가 이 책을 쓰기 위해 평생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한 이유를 알겠습니다. 한편 이렇게 자기 중심성을 사랑이라는 주제로 탁월하게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그가 책의 제목으로도 말한 것처럼 이 모든 문제의 해결을 ‘우리가 우리의 얼굴을 찾는 것’으로부터 말한다는 것이 매우 복음적입니다.
오루알은 스스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얼굴을 찾지 못했는데 어떻게 신과 얼굴을 맞댈 수 있겠는가?’
하나님과 대면하였다는 모세에 관한 말씀이 새삼 더욱 깊이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