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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와 즐거움은 상호보완적이다
“사람들은 우리 소비사회를 비판하면서도, 생각보다 훨씬 철저하게 소비사회를 길들여져 있다. 소비사회의 신조,즉 생산성이 그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다. 생산성이 삶에서 모든 것을 뜻하는 것인 양 그들은 생산성 향상에 몰두한다. 게다가 현대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주변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노동과 생산 및 생산성에 기반을 둔 가치 시스템’의 상속자들이다…” 결국 ‘진정한 노동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의미를 묻는데 까지 오고 말았다. AGI의 시대에 진입하며 미래를 누구도 장담할 수 있는 일자리 문제 앞에 인간은 과연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와 같은 근본적인 물음부터 시작하여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치열하게 찾아야 한다.이런 의미에서 누가복음의 복음처럼 지금 웃느니 우는 자가 복되다. 우는 것이 답은 아니지만 그래도 울기 때문에 답을 찾으려는 시도에
엄태우 목사
4일 전
실제로 가난해야 하고 영적으로도 가난해야 한다
아무리 여러 모양으로 포장을 하고 감추려고 해도 가난을 자신의 문제로 여기는 순간부터 우리의 솔직한 속내가 드러난다. 이 세상에서 인간은 가난을 악으로 본다. 그 강력한 증거는 건강한 사람은 누구도 자신이 가난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만일 스스로 가난을 추구한다면 속이고 있거나 살아가는 방법에 있어서 병든 것이다. 물론 청빈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도 가난한 사람을 주목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청빈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모종의 영향력을 주고 있다면 그 사람은 가난이라는 컨텐츠로 가난하지 않게 사는 법을 터득한 사람이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전체주의든 누구도 자신이 가난한 편에 들어가기를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다. 더 끔찍한 것은 이런 자연스러운? 속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난한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우리는 자신이 스스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성경말씀도 내가 남을 헤아리는 헤아림으로 나도 헤아림을 받는다고 말씀하신
엄태우 목사
5월 2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