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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상대성

  • 엄태우 목사
  • 5월 3일
  • 3분 분량

뉴턴식의 사고에 의하면 빛의 속도는 계속해서 가속이 붙어 빨라져야 합니다. 그러나 실험에 의해서 빛은 속도가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에 대해서 하나의 가정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가속이 붙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 실제로 빛의 속도 변화가 아니라면 다른 요인이 원인이 되는 것인데 만일 시간이 다르게 적용된다면? 여기서 그가 발견하게 된 것이 상대성이론입니다. 정지된 상태나 속도가 느린 상황에서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빠른 반면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 안에서는 밖에서 우주선을 보는 사람의 시간보다 느린 시간 속에 있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잃어버린 우주선의 잔해를 찾기 위해서 어떤 행성에 들어가서 불과 몇 시간 머물다 돌아오는 장면이 있는데 우주선에 남아서 기다리던 사람은 수십년의 세월을 지나 할아버지가 됩니다. 이것이 시간의 상대성 원리를 적용한 예입니다. 고전 물리학에서 시간과 공간은 절대값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속불변의 원리가 발견되고 난 후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각의 큰 틀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우주에서 빛은 일정하며 물체의 운동이나 힘에 의해서 시간과 공간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합니다.

이런 상대성의 원리를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주일 예배를 할 때 그 예배에서 받는 은혜의 풍성함이 다릅니다. 물체의 운동과 힘에 따라 시간이 상대적으로 다른 것처럼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서 은혜의 풍성함이 다릅니다. 은혜를 물질처럼 무게나 부피로 측량할 수 없지만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결과들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은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은혜라는 말 자체가 '죄로부터 속량하셨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유합니다. 여기서 자유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이루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만일 은혜를 받았는데 그 은혜만큼 자유하지 않을 때 은혜는 그냥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나에게 일종의 ‘정죄’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정죄는 성경에서 말하는 사탄이 죄로 말미암아 성도들을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은혜에 대해서 충분히 반응하지 않으면 두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그 은혜를 당연하게 여김으로 그만큼 내 양심이 둔감해집니다. 그리고 은혜에 대해서 반응하지 못한만큼 다음번에 같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 일종의 ‘빚’이 생깁니다. 이전에는 5만큼의 자유를 위해 5만큼의 은혜면 되었는데 은혜에 대해 반응을 하지 못하면 5보다 더 큰 은혜를 가져야 5만큼의 자유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같은 예배를 드렸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다릅니다. 겉으로 볼 때에는 천 번째 예배를 한 사람보다 태어나서 처음 예배를 하는 사람이 은혜가 더 커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볼 때 천 번째 예배를 했기 때문에 익숙한 사람이 받은 은혜는 처음 예배하여 모든 것이 새롭고 신선한 사람이 받은 은혜와 비교할 수 없이 큽니다. 우리는 한계효용의 법칙에 익숙하여 이 사실을 영적인 사고를 하지 않으면 잘 알 수 없습니다. 결국 천 번의 예 배를 한 사람은 자신에게 주시는 은혜에 대해서 놓치지 않기 위해 하나님 앞에 더욱 겸비하며 예배에 나오지 않을수 없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와 같은 복음의 역전 현상은 은혜의 상대성에서 비롯됩니다. 같은예배를 한 시간 한다고 할 때 천 번째 예배하는 사람의 1초는 처음 예배하는 사람의 1시간과 같은 밀도와 무게를 가집니다. 이것은 다분히 ‘깊이’에 의해서 나타납니다. ‘깊이’는 ‘많음’과 다릅니다. ‘많음’은 율법적인 개념에 가깝고 ‘깊이’는 영적인 개념에 가깝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사역하시는 중에 고라신과 벳세다가 회개하지 않음을 두고 두로와 시돈, 소돔과 고모라보다 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요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한 니느웨사람과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찾아왔던 남방여왕이 너희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은혜의 상대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교회)에서 지극히 작은 사람이라도 여자가 나은 자 중에 가장 큰 세례요한보다 큰 것입니다.은혜의 상대성에 대해서 구구절절 말씀드린 이유는 내 삶이 현실 속에서 풀리지 않는다고 느껴진다면 이 점을 살펴보고 답을 찾기 위해서 입니다. 위의 말씀을 종합할 때 우리의 답은 매우 작은 변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작다고 해서 사소하지 않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변화가 이루어질 때 남들이 알아채지 못할 만큼 세미한 변화입니다. 주일은 이렇게 성령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의 깊은 곳에서 작은 변화를 일으키시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장차 나 자신의 삶 뿐만이 아니라 열방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로 나타나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이 광속불변의 원리 하에 의심하지 않았던 시간에 대한 생각의 틀을 바꾼 것처럼 나 외에 다른 사람과 환경에서 문제의 원인을 두던 사고의 틀이 바뀌어 나를 바꾸시도록 하나님께 동의를 드리는 주일 되기를 축복합니다. 어린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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