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주일
- 엄태우 목사
- 5월 19일
- 2분 분량
얼마 전 교육부 주최로 열린 현장학습에 대한 간담회 영상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조회수가 빠른 시간에 천만회를 넘길 정도였습니다. 그 영상 중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장면은 초등교사 노조위원장의 발언이었습니다. 그의 발언 중 ‘스승의 날’을 ‘교사의 날’로 명칭을 변경하자라는 말은 오늘 교육현장이 이 사회에 보내는 SOS 신호 같았습니다.
우리 말에 가르치는 이를 부르는 말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사(師), 선생(先生) 그리고 스승입니다. 이 중에 스승은 순우리말입니다. 스승의 기원은 여러 주장이 있지만 ‘사’나 ‘선생’보다 높여 부르는 격을 갖는다고 합니다. 5월 15일이 스승의 날로 지정된 연유는 세종대왕의 생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며 ‘민족의 큰 스승이시다’ 하여 그의 생일을 스승의 날로 정한 것입니다. 그러니 스승이란 말이 지닌 격은 단순히 가르치는 일을 뛰어넘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쉽게 선생으로 번역을 하는데 사실은 ‘주인’에 가까운 의미입니다. 가르치는 이를 높여 부르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랍비를 정확하게 번역한다면 선생보다 스승이 더 가깝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마치 모택동의 문화혁명처럼 권위를 타파하자는 주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아무리 남다른 능력과 품위를 가져도 율법 하에 살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선생이 없이 모두 동등하게 지내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적 경향의 대표적인 증상이 남을 가르치려는 행위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사도가 유대인들의 죄를 언급하면서 ‘남을 가르치는 문제’를 거론하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더 짓지 않으려면 타인을 가르치지 않으면 됩니다. 그래서 근래에는 아예 타인을 가르치는 일을 매우 부정적인 일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심지어 부모조차도 가르치는 일을 피합니다. 아무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것도 심각한 율법적 경향입니다. 배우려고 하지도 않고 가르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사회는 혼란스러워지고 무질서해 집니다. 신앙에는 성장이 없으며 구원의 진리도 모호해 집니다. 더욱 ‘내가 진리다’라는 시대정신에 흡수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성경의 율법을 자세히 보면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상충되는 말씀을 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어디서는 하라고 말씀하시고, 다른 곳에서는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이 둘 중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여 아전인수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율법을 율법조문 즉 문자로만 지키는 것은 죽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아는 것이 율법이 주는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형제이니 선생이 되려고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성경은 다른 곳에서 우리에게 제자도를 말씀하시며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일에 힘쓰라고 명령합니다. 무엇이 맞을까요?남을 가르치려고 하는 율법적 경향성에 대한 유일한 방법은 ‘배우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듣고 순종, 청종(聽從, שָׁמַע)’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랍비이신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께 배우는 사람입니다. 다만 역할이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로 나뉠 뿐입니다. 각자의 위치에서자신의 소임을 다하며 그리스도께 배우는 일에 전력합니다. 주일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역할로 학생들은 선생님께 배우는 역할로 함께 그리스도를 배우고 얻습니다.그러면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사람과 배우는 역할을 하는 사람 중 누가 더 복을 받을까요? 다시 질문합니다. 누가 더 낮아지고 겸손해져야 할까요? 누가 더 희생하고 참고 견뎌야 할까요? 예수님은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 18:6)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입니다. 이것을 율법적으로 이해하면아무도 가르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적으로 이해한다면 가르치는 역할을 맡기심이 나에게 큰 복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며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주님의 선물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 21:15)
스승의 주일을 맞아 우리의 랍비이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우리의 형제된 교사들과 감독자들을 심심(甚深)한 마음으로 축복하고 위로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