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와 즐거움은 상호보완적이다
- 엄태우 목사
- 6월 1일
- 3분 분량
“사람들은 우리 소비사회를 비판하면서도, 생각보다 훨씬 철저하게 소비사회를 길들여져 있다. 소비사회의 신조,즉 생산성이 그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다. 생산성이 삶에서 모든 것을 뜻하는 것인 양 그들은 생산성 향상에 몰두한다. 게다가 현대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주변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노동과 생산 및 생산성에 기반을 둔 가치 시스템’의 상속자들이다…”
결국 ‘진정한 노동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의미를 묻는데 까지 오고 말았다. AGI의 시대에 진입하며 미래를 누구도 장담할 수 있는 일자리 문제 앞에 인간은 과연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와 같은 근본적인 물음부터 시작하여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치열하게 찾아야 한다.이런 의미에서 누가복음의 복음처럼 지금 웃느니 우는 자가 복되다. 우는 것이 답은 아니지만 그래도 울기 때문에 답을 찾으려는 시도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한 달째 ‘노년의 의미’를 추천도서로 올려 놓았다. 폴 트루니에는 인격의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사람이다. 기독교인이고 마음과 관련하여 복음을 소개한 사람으로 20년 전 쯤에 한국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사이 그 주제가 한국교회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폴 트루니에의 번역서들은 대부분 절판된 상태이다. 그의 명성?을 기억하던 나에게 제목이 힘 빠지는 것이지만(나는 아직 젊다는 생각인지) ‘노년의 의미’가 눈에 들어왔고 추천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사실 대부분 내가 읽고 나서 추천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좀처럼 추천하려는 나 조차도 손을 대지 않을 것 같아서 먼저 추천하고 후에 읽기를 택했다. 한 달째 책을 읽지만 사실 나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나와는 아직 거리가 먼 느낌이었고 내용이 노년에 관한 것인 지라 계속 독려하며 힘과 동기를 부여할 것을 원하는 나에게 접촉점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추천을 했으니 한번은 진지하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작심하고 자리에 앉아 읽기를 시작했다.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머리 속에 ‘아차’하는 느낌과 함께 한 번에 세, 네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먼저는 이 책은 목회자인 내가 목회를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였고 두 번째는 그만큼 나에게 성경이 아닌 세상의 풍조가 깊이 뿌리 박혀 어쩌면 말씀보다 나의 생각과 관점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세 번째는 그런 나 자신에 있어서 절망감과 동시에 모르던 문제를 발견했기에 답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우리가 자신을 성찰하다보면 우리의 신앙에 성경에 없는 것들, 성경과 다른 것들 심지어 성경과 반대되는 것들이 들어와 나에게 영향을 주고 심지어 나를 다스리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랑의 정의에, 나의 기도를 만드는 소망과 비전에, 충성한다고 말하는 나의 열심에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이 들어와 마치 예수님인 것처럼 행세하여 끊임없이 나의 영적 체력을 소모시키거나 반복적인 문제를 만들어 버린다. 아니면 도둑인데(요10:2) 너무 오랫동안 나와 동거하여 내가 그 도둑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익숙해진 자신을 보게 된다.
우리는 일에 익숙하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처하게 된 현실이다. 일에서 벗어나려고 인간은 애를 쓴다. 그런데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채 일로부터 해방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마치 살아있으니 먹는 것인데 먹기 위해 사는인생으로 바뀌는 것처럼 인간성을 상실한채 다만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살아간다.
폴 트루니에는 ‘노년의 의미’에서 우리는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쉬는 것에 대해서 마음 깊은 곳에 떳떳하지 못한 것이란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살면 결국 일도 쉬는 것도 없이 오직 흑암의 세상에서 ‘매임’만 남게 된다. 일을 해도 자유하지 못하고, 쉬고 있어도 머리속은 계속 일을 하고 있는 갇힌 상태로 사는 것이다. 나는 ‘노년의 의미’를 읽어야 하는 두 가지 실마리를 가지게 찾았다. 폴 트루니에는 노년이 된다는 것을 점점 내향성이 강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래서 성경은 나이가 드는 것과 지혜를 연결한다. 실마리 중에 하나는 우리가 죄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없기에 내 힘으로 살아야 하는 노동에서 구원받은 자로 자원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맡겨진 바 사명을 감당하는 청지기로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청지기에게는 의무와 즐거움이 상호 보완적이라는 점이다. 두번째 실마리는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거룩의 밀도가 높아지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지금까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일종의 ‘높아진 이론’ 혹은 ‘견고한 진’들을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