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러기의 은혜
- 주유연
- 4월 20일
- 2분 분량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마15:27]
“부스러기의 은혜라도 받겠습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은 모두가 이럴 것이다. 딸이 낫기만 한다면 사람들의 시선이나 체면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개라고 불리는 모욕적인 말 앞에서도 괜찮을 것이다. 이 어둠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예수님임을 확신했던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나도 절박한 마음으로 그분의 발치에 엎드린다.
나에게 예원 예준 예성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라는 질문은 마치 이방 땅에서 터져나온 수로보니게 여인의 절규와도 같았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이 마치 우리 아이들이 세상 아이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공부하는 것과 같았고, 여인으로서 낯선 유대인 남자에게 다가갔던 그 용기는 혈루병 든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잡으면 나을 수 있다는 간절한 마음과도 같았다.
예원 예준 예성이가 내 것이냐 주님의 것이냐부터가 시작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나는 진작부터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 드렸다. 정확히 말하면 맡겨 드렸다고 생각했다.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잘 되게 하시겠지~‘ 내가 생각하는 틀에 예수님을 가둬주고 그러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길 때마다 ‘왜 이러지?’ 하면서 ‘내가 못나서 그런거야...‘ 정죄 받고 염려하고 아이들을 혼내고 다그치기 일쑤였다.
특히 장자인 예원이가 잘 컸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신앙과 공부에 있어 뒤따라오는 동생들에게 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면 이렇게 되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은 내 속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주님께 엎드리고 주님의 뜻을 간절히 구할 수밖에 없었다. 학창 시절 방황하다 공부할 시기를 놓쳐 어려움을 겪었던 나의 과거를 예원이에게 똑같이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땅에 떨어진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고 싶은 심정으로 주님께 엎드렸다. 주님께서는 다 뜻이 있으시다고 응답해주셨다. 내 믿음이 부족하기에 염려가 틈타는 것이였다.
하나님께서는 크시고 선하시며 언제나 옳으시다. 그래서 우리의 과거도 현재도 이 모든 순간들도 알파와 오메가 되신다. 분명 각자를 향한 뜻과 계획이 있으시고 그 시와 때는 주님만 아신다.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며 극찬하셨다. 그녀의 믿음은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이었고, 주님의 말씀 한마디면 충분하다는 확신이었다. 나도 그녀의 끈질긴 간구와 겸손한 고백을 닮길 원한다. 결국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유대인을 넘어 온 열방으로 흘러갔던 것처럼 우리도 또한 그렇게 아름다운 통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