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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l we have faces, we cannot love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를 열면 제일 먼저 저자 서문 전에 세익스피어의 소네트 151편의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사랑은 너무 어려 양심이 무엇인지 모른다네.’ Love is too young to know what conscience is 이 책에서 C.S.Lewis가 프시케 신화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을 잘 드러내는 문장입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프시케의 언니 오루알입니다. 오루알이 사랑을 통해서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저자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인간이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집착하거나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그것은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의 표현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통제하는 것으로 나타탑니다. 오루알은 프시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동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프시케가 신과 사랑하려고 하자 그것을 방해하고 마침내 파괴하였습니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는
엄태우 목사
4월 20일
자유의지와 자기중심성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수천년 동안 철학과 과학의 주제가 되어온 이 문제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유신론자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방향으로 말하고, 무신론자는 자유의지는 없다는 성격의 주장을 한다. 오히려 인본적인 관점이 농후한 무신론자가 자유의지를 강조할 것 같은데 결론에 이르게 되면 매우 냉정하게 자유의지에 대해 부정한다. 그들은 자유의지란 통제할 수 없는 생물학과 사회학적 환경의 산물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내 생각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매우 교묘하고 섬세하게 빌드업된 타인 혹은 외부의 의지일 뿐이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여러분들이 토라를 읽어보면 성경은 이런 주제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지 느낌을 알 수 있다. 토라는 이런 현실에서 본질에 해당되는 질문에 대해서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라는 답을 내놓는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이런 성격의 주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종종 시험했다. 성경을 보면 상충되는 구절이 여럿
엄태우 목사
4월 1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