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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와 자기중심성

  • 엄태우 목사
  • 4월 13일
  • 1분 분량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수천년 동안 철학과 과학의 주제가 되어온 이 문제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유신론자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방향으로 말하고, 무신론자는 자유의지는 없다는 성격의 주장을 한다. 오히려 인본적인 관점이 농후한 무신론자가 자유의지를 강조할 것 같은데 결론에 이르게 되면 매우 냉정하게 자유의지에 대해 부정한다. 그들은 자유의지란 통제할 수 없는 생물학과 사회학적 환경의 산물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내 생각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매우 교묘하고 섬세하게 빌드업된 타인 혹은 외부의 의지일 뿐이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여러분들이 토라를 읽어보면 성경은 이런 주제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지 느낌을 알 수 있다. 토라는 이런 현실에서 본질에 해당되는 질문에 대해서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라는 답을 내놓는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이런 성격의 주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종종 시험했다. 성경을 보면 상충되는 구절이 여럿 있는 것을 우리는 발견한다. 율법주의적인 사람은 그 중 어느 한 가지를 가지고 잣대를 삼는다. 


그렇다고 성경이 줏대없이 이랬다 저랬다 한다는 말은 아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는 지혜롭게 들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을 읽으면 그 상충되는 말씀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 있다.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자유의지’란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다른 피조물들과 다르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으셨다고 했다. 인간의 겉모습(모양)은 철학적이다. 우리는 겉모습이 파손된 모습을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는다. 우리의 모양은 진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과 신성을 반영한 것이다. 가끔 외계인들을 영화에서 본다. 본적이 없는 외계인들의 모양은 인간을 원안으로 가지고 있다. 그것을 왜곡한 것이 외계인이다. 그래서 외계인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거나 완벽해 보이지 않다. 이것은 우리의 겉모습이 하나님의 신성을 담고 있는 철학적 구조물이라는 사실이다. 마치 성전과 같이 말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풍성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어린이가 친구에게 나누어 주는 일을 왜 우리는 선하게 여기는가? 이것은 누가 심어준 것인가? 답은 그냥이다. 원래부터 그런 것이고 이것에 대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우리는 사이코 패스라고 부른다. 그 근본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인간성이 파괴된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의 최종 결과는 ‘자유의지’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깨달아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지음받았다. 이것이 자유의지의 쓰임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이런 본질을 거부한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어 모든 피조물 중에 탁월하고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지음받은 존엄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 자유의지는 자유로운 존재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수여하신 것이다. 인간은 이것을 망각한다.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동기인 ‘하나님처럼 된다’라는 것이 이 점을 가리킨다. 자유만큼 인간에게 강력한 갈망이 없다. 자유를 갈망하지 않은 인간은 병든 인간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을 제외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것은 인간을 더욱 철저하게 자유롭지 않은 존재가 되게 만든다. 


그렇게 변질된 자유의지가 바로 자기중심성이다. 자유의 힘과 내적 갈망을 안다면 이 자기중심성이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자기중심성의 예로서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한 단면은 바로 살고자 하는 의지, 반대로 말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이 땅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아이언맨 슈트의 아크원자로와 같은 것이다. 아크원자로가 꺼지면 아이언맨이 힘을 잃듯 자기중심성은 절대적인 힘을 갖는다. 


바울사도가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결코 없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절대적인 힘인 자기중심성이 죽고 원래의 자유의지를 회복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에 있기 때문이다. 바울사도의 딜레마는 이것이다. ‘율법을 지키자니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지고 율법을 지키지 말자니 그것도 죄 가운데 머무는 것이고… to be or not to be, It is the problem!’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자기중심성의 중독과 거짓에서 벗어나 흑암 가운데서 자유로운 빛의 자녀로 살아가게 한다. 


흑암은 깊음 위에 있었다. 그러나 혼돈으로 인해 깊음은 흑암을 삼키게 되었고, 우리는 자유를 위해 내 안에 깊은 곳에 있는 어둠을 직면해야 한다. 그 어둠은 역설적으로 ‘참 빛’ 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하지만 어둠에 익숙한 우리는 그 어둠을 직면할 때 죽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고는 외면하는 법을 선택한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하신 태초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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