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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21:17...” 올해 2월 말쯤 주캠 3학년들과 함께 설악산 중청쯤 왔을 때였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눈이 오는 바람에 신발도 양말도 다 젖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체하기까지 했었다. 등산 이래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얼마큼 더 걸어야 대피소가 나올까.... 점점 눈은 감기고 한걸음 디딜 때마다 내 발은 통나무를 드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예전 보다 못한 컨디션에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지던 찰나 문뜩 머릿 속에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앞으로 이 험한 산을 몇 번이나 더 올 수 있을까... ?’ 그렇게 반 감은 눈과 피곤한 몸둥이를 이끌고 눈보라 속을 걸을 때 주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렸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설경은 주님 내게 주시는 겨울편지와도 같았다. “유연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왜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세요~ 당연한 걸
주유연
4월 27일
부스러기의 은혜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마15:27] “부스러기의 은혜라도 받겠습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은 모두가 이럴 것이다. 딸이 낫기만 한다면 사람들의 시선이나 체면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개라고 불리는 모욕적인 말 앞에서도 괜찮을 것이다. 이 어둠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예수님임을 확신했던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나도 절박한 마음으로 그분의 발치에 엎드린다. 나에게 예원 예준 예성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라는 질문은 마치 이방 땅에서 터져나온 수로보니게 여인의 절규와도 같았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이 마치 우리 아이들이 세상 아이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공부하는 것과 같았고, 여인으로서 낯선 유대인 남자에게 다가갔던 그 용기는 혈루병 든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잡으면 나을 수 있다는 간절한 마음과도 같았다. 예원 예준 예성이가 내 것이냐 주님의 것이
주유연
4월 2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