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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중심성과 자유의지
자아自我. ‘나 자신’이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죄의 본질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테베시의 기근과 전염병의 창궐의 원인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오이디푸스 자신이었던 것처럼. 아마 프로이트가 21세기에 살았더라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문제의 원인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자신에게 있는 모순적 상황’이라고 정의내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자아가 죄의 본질이라는 것은 그 성격을 가지고 비교할 때 그것은 꼭 하나님의 신적 계시가 있어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건전한 이성으로도 발견할 수 있는 진리다. 물론 ‘죄의 본질’이라고 말하기까지는 말씀의 빛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문제라고 말하는 것의 원인이 타인과 환경에 있다고 생각하는데에서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로도 사람이 충분히 이를 수 있다. ‘율법’의 문제다. 동시에 조나단 에드워즈는 자아가 중립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자아’ 자체가 죄이
엄태우 목사
8월 17일
완고함와 회개라는 갈림길
하루 24시간은 너무 짧게 느껴진다. 그래서 잠을 줄이고 최대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보려 했다. 하지만 깨달은 것은 제한된 시간안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지름길만 찾으면 성공할 줄 알았는데, 힘 닿는데까지 열심을 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늘 직성이 풀릴때까지 해보고 나서야 깨닫는다.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들을 보면 조급해지고, 그럴수록 불안은 내 힘으로 살아가려는 완고함을 더 강화시켰다.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믿고 담대하게 변화의 길로 들어서기보다, 나의 능력과 세상에서 쌓은 노하우를 붙들며 살아왔다. 얼마 되지 않는 능력과 얕은 지식이 나를 더 완고하게 만들었다. 하나님 앞에서 오만방자한 인간이 되기가 참 쉽다. 그런데 회개를 해도 완고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내 안에 잠식하여 영혼을 갉아먹는다. 변화되기를 두려워하는 자기 사랑, 끝내 듣기를 거부하고 내 고집대로 하려는 아집이 눈을 가린다. 롬1:21-22) 하나님을 알되
임지영
8월 1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