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본선교 이야기
- 신현기
- 1월 6일
- 1분 분량
나의 일본선교는 장흥선교에서 받은 큰 은혜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감동이 일본선교 등록으로 이어졌고, 일본선교에 열정적인 사람들이 모인 오카야마팀에서 첫 일본선교를 하게 되었다. 첫 선교에서 하나님은 ‘무언가를 해내라’기보다, 일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느껴보라고 하셨다. 오카야마 대학에서 대학생들에게 사영리를 전하고, 구내식당과 오락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복음을 나누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결과보다 시선과 마음을 바꾸고 계셨다. 이후 산요그리스도복음교회와 연결되어 7년 동안 일본 성도들과 깊이 교제하며 매주 토요일 기도회와 온라인 한국어 교실로 섬기게 되었고, 선교가 깊어질수록 ‘미리 기도를 쌓고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기도의 자리를 지켜왔다.
7년의 시간 중 가장 선명하게 남은 순간은 대학 4학년 2학기, 취업에 모두 실패하고 깊은 좌절 가운데 있을 때였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선교를 가라는 마음이 멈추지 않았고, 결국 하숙비를 빼서 일본으로 향했다. 선교지에서 조용한 길을 걸으며 “왜 저를 여기로 부르셨나요?”라고 묻던 시간 속에서,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산요교회 아이들이 나를 만나기 위해 기도해 왔다는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를 통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깨달았고, 마음에 “이 일을 나와 같이 하지 않을래?”라는 주님의 음성이 남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이후 회사에 다니면서도 그 부르심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때 아이들이 선물해 준 비즈 팔찌 두 개 중 하나를, 훗날 지금의 아내에게 고백하며 건넸다. 나에게 그 팔찌는 주님께서 일본선교를 위해 짝지어 주신 아내임을 기억하게 하는 징표였다. 이후 내가 선교에 가지 못하던 시기에는 아내가 팀장을 맡아 그 자리를 이어갔다. 신촌연합교회로 오며 7년간 섬긴 산요교회와는 이별했지만, 일본 교회가 가진 외로움과 갈급함 속에서 함께 기도하고 믿음의 동지가 되는 교회됨과 제자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더 분명히 품게 되었다. 일본선교는 단기가 아니라 장기적인 교회됨의 여정이다. 그래서 나에게 지금 가장 현실적인 선교 준비는, 일본어를 배우는 일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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