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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바운더리, 사우디 아라비아
가끔 아내는 저를 보고 "이 사우디 사람아!"라며 놀리곤 합니다. 외모 때문이 아니라, 대화 하다가 의견 차이가 날 때 드러나는 저의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저의 뿌리는 한국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더 깊이 닿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자란 사우디는 지금과는 달리 매우 폐쇄적인 곳이었습니다. 식당 입구조차 남성 전용인 싱글존과 가족이 들어가는 패밀리존으로 엄격히 나뉘어 있었고, 영화관이나 노래방, 카페 같은 문화시설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 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유희라고는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결핍의 환경은 저에게 큰 축복이었음을 생각해보게됩니다. 술과 돼지고기가 금지된, 세상의 유혹이 물리적으로 차단된 그곳은, 부모님의 기도로 세워진 우리 가족과 신앙을 지켜준 "은혜의 바운더리" 였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마주한 한국은 "돈만 있으면 살기 좋은 나라"였지만, 동시에 모든
김용호
2월 9일
이소테스의 시작
대학 시절, 교회에서 떠난 캄보디아 비전트립은 제 삶의 방향을 바꾸는데 작은 울림을 주었던 전환점이었습니다. 당시 교회에서 파송하신 선교사님께서는 현지 청년들을 대상으로 의료센터를 운영하며 복음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그곳에 모인 청년들은 의사라는 꿈을 품으며 열심히 공부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청년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게되었는데, 무리들 중에 영어 회화가 가능한 청년이 저에게 ”그동안 어느 나라들을 다녀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별생각 없이 “사우디, 요르단, 두바이, 호주, 몽골 등 여러 나라를 다녀왔다“고 답했습니다. 그런 저의 대답을 들은 청년은 “정말 많은 축복을 받았구나”라고 말하며, “나의 꿈은 의사가 되어 한국에 가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 청년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대화는 저를 깊은 성찰로 이끌었습니다. 당연하게 누려온 나의 환경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꿈이구나 라는 미안함과 함께 내가 이 청년들을 위해
김용호
2월 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