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바운더리, 사우디 아라비아
- 김용호
- 2월 9일
- 1분 분량
가끔 아내는 저를 보고 "이 사우디 사람아!"라며 놀리곤 합니다. 외모 때문이 아니라, 대화 하다가 의견 차이가 날 때 드러나는 저의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저의 뿌리는 한국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더 깊이 닿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자란 사우디는 지금과는 달리 매우 폐쇄적인 곳이었습니다. 식당 입구조차 남성 전용인 싱글존과 가족이 들어가는 패밀리존으로 엄격히 나뉘어 있었고, 영화관이나 노래방, 카페 같은 문화시설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 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유희라고는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결핍의 환경은 저에게 큰 축복이었음을 생각해보게됩니다. 술과 돼지고기가 금지된, 세상의 유혹이 물리적으로 차단된 그곳은, 부모님의 기도로 세워진 우리 가족과 신앙을 지켜준 "은혜의 바운더리" 였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마주한 한국은 "돈만 있으면 살기 좋은 나라"였지만, 동시에 모든 것에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낯선 곳이었습니다. 넓은 땅 어디에나 무료로 주차하던 사우디와 달리 잠시 차를 세우는 것조차 비용이 발생하는 한국의 시스템은 저에게 문화충격을 준 것 중에 하나였습니다. 치열한 경쟁과 소비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신앙을 지키는 일은, 사우디에서의 삶보다 훨씬 더 정교한 분별력이 필요했습니다. 화려하고 복잡한 도시 생활 속에서도 제가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그 단조로웠던 사우디에서의 시간들이 제 영혼의 기초 체력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물론 지금도 아내와 교육관이나 가치관으로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제 안에는 여전히 사우디의 보수적인 모습과 한국의 현실적인 모습이 공존합니다. 하지만 낯선 환경 속에서도 교회와 부모님의 그늘 아래 저를 건강하게 성장하게 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제가 받은 그 은혜를 바탕으로, 저의 자녀와 교회의 다음 세대를 위해 든든한 바운더리가 되어주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