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하느냐 허용하느냐
- 엄태우 목사
- 6월 19일
- 3분 분량
이것은 우리의 삶과 일상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우리는 기억할 수 없을만큼 많은 선택을 하고 삽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반드시 결과를 불러오고 권한과 책임을 가져 옵니다. 그 선택의 문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제재냐 허용이냐’로 말할 수 있습니다. 같은 일이더라도 때에 따라서 다른 답이 될 수 있습니다. 지혜가 필요합니다.
최근에 젠슨 황의 인터뷰를 들었습니다. 그는 현재 미국 정부가 중국에 대해 반도체에 관해 제재를 가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기업들이 미국 기업들이 만든 반도체를 쓰도록 해야 중국 시장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산업을 미국의 관리 하에 더 오래 둘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현재 제재로 인해서 중국은 빠른 속도로 반도체나 AI 기술에 있어서 발전을 이루고 있으며 이것은 결국 중국이 더 이상 미국을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추월하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그의 주장을 뒷받침 하듯 최근 화웨이는 자신 만의 반도체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타오의 법칙’을 선언했습니다. 그것은 반도체 개발에 있어서 ‘시간의 문제’를 ‘공간’으로 바꿔 해결하겠다는 것입니다. 젠슨 황의 주장이나 미국 정부의 주장이나 들어보면 다 일리가 있습니다. 제재도 맞고 허용도 맞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역사는 그 가운데 한편의 손을 들어줄 것입니다. 이것을 미리 예견할 수 있다면 대단한 통찰을 가진 인물임이 틀림없습니다. ‘제재냐 허용이냐’는 반도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전 햄릿이 말했듯 ‘사느냐 죽느냐’로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쇼핑을 하는 순간 ‘사느냐 사지 않느냐’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둘 다 맞거나 둘 다 틀린 기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성경의 율법을 보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선택할지 답을 주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선택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그러나 성숙하지 않으면 내가 선택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천명하고 살아 갑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다르다는 사실을 직면하기를 거부하고 마음을 닫기도 합니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이런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권합니다. 신의 뜻을 구하면 해결될 줄 알았던 이 문제가 알면 알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 말씀을 자세히 보면 한 가지 사안을 가지고 성경은 두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결혼은 하나님께서 짝지워 주셨다고 가르치면서 한편으로는 특정한 경우에는 이혼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무엇이 맞냐고 질문합니다. 어떤 구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부자가 되게 하시기도 하는데 어떤 구절에서는 가난한 것이 복이 있고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힘들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죄인입니다. 여기서 죄인이라 함은 우리가 죄를 범했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태어난지 한달도 안된 천사같은 아기라 할지라도 ‘자기 중심적’이라는 뜻입니다.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생존 본능에 충실하며 그래서 생명을 유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자기 중심성이 나를 가두는 감옥이 됩니다. 그래서 사도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외칩니다. 성경이 같은 사안을 가지고 상호충돌하는 말씀을 주는 것보다 어려운 문제가 역설적 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컨대 ‘사랑하기 원하면 미워하라’ 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제자가 되려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자신을 미워해서, 우리 목숨을 가치 없게 생각하셔서 하신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 목숨을 사랑하여 영생을 누리고 살기 원한다면 ‘미워해야 한다’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내 힘으로 사랑하려고 애쓰면 오히려 원하는 것과 반대로 가니 내 힘으로 애쓰는 것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미워해야 한다’입니다. 아… 진리에 이르는 길은 이토록 멀고 어렵기만 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쉬운데 사랑이 뭔지 모르고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니 사랑한다고 하면서 내 마음대로 상대를 주조하려고 하니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미국 정부는 중국에 대해 제재를 하는 것이 맞을까요? 젠슨 황의 주장처럼 허용하는 것이 맞을까요? 저는 답이 중국에게 있다고 봅니다. 현재 미국 정부의 맹점은 중국 전문통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이란 전쟁에서도 드러나듯 헨리 키신저와 같은 현자가 미국에 부재하다는 사실이 상황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그는 복잡한 세계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이런 혜안을 제시합니다. “세계 질서는 한 지역이나 문명이 공정한 합의의 특징과 힘의 분배에 관해 전 세계에 적용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개념을 설명해 준다. 국제 질서는 이러한 개념들을 전 세계의 세력 균형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넓은 지역에 실질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지역 질서는 특정한 지리적 지역에 적용되는 동일한 원칙들을 수반한다.” 헨리 키신져는 죽의 장막을 연 인물로 회자됩니다. 그는 자신의 일담을 소개합니다. 자신이 미국 대표단을 데리고 중국을 방문하면서 중국은 ‘미스테리한 나라’라고 말했답니다. 저우언라이는 그에게 “중국은 미스테리한 나라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에게 미스테리한 사실이 중국 9억명에게는 지극히 정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복음의 메시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