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다
많은 논란 끝에 결국 절판하게 된 김난도교수의 16년전 책의 제목입니다. 책의 소개를 보면 ‘저자는 교정에서 학생들과 매일같이 부대끼며 … 소통하며 … 그들만의 아픔을 헤아려 수많은 청춘들의 공감을 얻어 왔다. … 청춘을 나이가 아닌 ‘상태’로 정의하며, 불확실성 속에서 자기 존재를 고민하고 스스로의 속도로 살아갈 것을 권한다’ 라고 하지만 젊은이들의 격한 반대를 받으며 제목에 대한 부정적인 패러디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우리 속담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도 있는데 저자의 의도가 전달되지 못할만큼 변해버린 사람들의 생각을 드러내는 현상이었습니다.
세상 누구도 고통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통을 겪으면서 행복해 하는 사람은 건강한 정서가 아닙니다. 기쁘고 즐거운 것을 좋아하는 것이 본성이요, 건강한 의식입니다. 그럼에도 현실에는 고통이 있으며,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고통이 없는 곳은 오직 묘지 뿐입니다. 고통은 아무에게도 익숙해질 수 없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고통이란 걱정해 주는 사람이 주위에 아무리 많아도 오롯이 자신의 몫을 스스로 감당해야 합니다. 고통은 예고 없이 찾아오며 해결책이 없습니다. 시간이 답입니다.
고통의 본질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둠입니다. 그래서 본성적으로 사람은 밤을 무서워하나 봅니다. 어둠의 속성을 ‘공허와 혼돈’이라고 합니다. 고통의 제목이 무엇이든 고통을 겪을 때 우리의 정서는 공허감과 혼돈상태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흑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항상 고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고통이 보통 외부의 환경 때문에 온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솔직하게 나의 내면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황을 통해서 어둠이 드러나 인지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고통을 느끼고 그것에 사로잡힙니다. 하지만 이 근원이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면이라는 사실을 알면 일단 혼돈은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외부의 환경에 고통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상 혼돈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됩니다. 겉보기에는 누군가 아니면 환경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같지만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둠이 고통의 느낌과 생각들을 만들어 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통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우리가 사는 곳은 흑암입니다. 이곳을 떠나게 되면 고통이 없게 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곳에 있어도 소속의 믿음이 삶의 케파보다 크다면 고통이 와도 우리는 휘말리지 않습니다. 고통을 겪을 때 신자는 겸손해지면서 자신의 소속이 어디인지 나타나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편리함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서 고통이란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만큼 우리는 평소에 기본적으로 교만하며 고집을 부리지 않아도 완고합니다. 고통이 오면 믿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 낮아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리고 삶에서 한층 더 깊은 성찰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니다.
이수정선생님은 회심한 이후 자신의 신앙고백서에서 ‘구원 받은 믿음은 하나님과 나 자신의 감응感應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찾아야 하는 신앙의 ‘감응’ 가운데 확실 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고통의 순간에 일어나는 내면의 성찰입니다. 동굴에 갇힌 것 같이 어둡고 무서운 순간에 아주 작은 빛줄기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이 모든 일은 나 자신을 겸손하게 만들어 자신의 깊은 곳을 들여다 봄으로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합니다.
아마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도 우리의 오랜 속담도 ‘젊을 때는 힘들어도 된다’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돌아 볼 때 쾌락보다 고통이 자신을 성찰의 길로 이끌었던 기억을 살려 젊을 때 성찰의 유익을 전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편 캠퍼스 교회인 신촌연합교회는 ‘제자도의 기치’를 들고 고통 가운데 성찰을 통해서 영원하고 완전한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지금의 행복’으로 여기는 것이 복음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