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사는 것
- 엄태우 목사
- 3월 30일
- 2분 분량
진리를 알게 되면 흑암에서는 진리를 아는 이치가 역설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 우리가 자기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결과입니다. 일반적인 예로 가지고 있을 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사라지고 나서야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됩니다. 이것을 극복하고 산다면 참으로 행복한 인생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지고 있을 때는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라지고 나서 그것이 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산다’에 대해서 한 주간 묵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를 위한다는 말이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사는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보다 ‘사는 것’이 시급합니다. 왜냐하면 ‘사는 것’의 정의와 실존이 침식된 해안처럼 소실되어 가는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은 많은데 내가 누구이며, 내가 만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바쁘게는 사는데 무엇을 위해 살며 길의 끝이 무엇인지는 불명확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를 알기 위해서 먼저 ‘사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가 수를 놓는 것이라면 ‘사는 것’은 수를 놓는 베갯잇입니다. 허공에다가 수를 놓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과거에는 사는 것을 전통에서 배웠습니다. 하지만 근 100년 사이 전통을 부조리라는 미명하에 사람들은 모두 부정해버렸습니다. 부정하고 나면 금새 더 좋은 것이 나타날 줄 알았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어리석게 보이던 앞선 세대들이 얼마나 지혜로웠는지 알게 됩니다. 부정하는 것은 쉬웠으나 더 나은 것은 해 아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사는 것의 답을 ‘깊음’에서 찾아봅니다. 깊음은 흑암이라고 부르는 ‘땅’의 본질적인 특징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1:2)
깊음을 다른 말로 large body of water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하늘과 땅을 만드셨는데(여기서 하늘과 땅은 sky와 land가 아닙니다.) 땅은 매우 거대한 일종의 물덩어리였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하늘과 대별되는 땅의 세계는 밑도 끝도 없는 혼돈과 공허의 물덩어리였습니다. 가장 수심이 깊은 마리아나 해구(약 1,100m) 보다 더 아득한 깊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깊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사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깊음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은 시편에서 깊음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 말씀합니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욘 2:3)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시 107:26-27)
하나님께서는 깊음을 가르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십니다.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사 51:9,10)
홍해를 건넌 사건은 단회적인 역사적 사실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깊음 가운데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신성한 징표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깊음을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승리과 구원의 길로 사용하십니다. 깊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은 인간에게 형벌로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땀을 흘려야 양식을 얻을 수 있다’고 노동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깊은 곳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성령하나님을 통해 알게 될 때 이것은 저주가 아니라 이 땅에서 길을 잃지 않고 살게 하신 하나님의 자비요, 모략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바다를 가르시고 용을 물리치시며 우리를 그 가운데로 지나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사는 것이 허망함이 아닌 그리스도를 위함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