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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story

시온의 기촛돌

엄태우 목사
9월 21일
3분 분량

(아래의 글은 정호승시인의 동화 ‘주춧돌’을 글을 교회에 맞게 각색하여 옮긴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나는 야산의 한 중턱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바윗돌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 자신의 삶에 대해 늘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별빛들이 맑게 빛나는 밤이면 나는 나 자신이 별이 되어 빛난다고 생각했으며, 햇살들이 내 몸을 간질이는 아침이면 나는 나 자신이 햇살이 되어 빛난다고 생각했다. 어디 그뿐인가. 산수유가 핀 뒤 봄비라도 오는 날이면 봄비가 되어 어디론가 흐른다고 생각했으며, 비가 그치고 바람이 불면 한 포기 풀잎이 되어 바람에 흔들린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나의 삶은 늘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해가 떠도 웃었고, 별이 떠도 기뻐했으며, 눈이 오거나 꽃이 피면 더욱더 기뻐했다. 무엇 하나 슬픔으로 마음 아플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인 이후부터 나는 조금씩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늘 새소리와 이슬소리와 맑은 바람소리만 듣던 내 귀가 웬일로 사람의 말소리를 알아듣게 되었는지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사는 이곳은 길을 아는 사람들이 다니는 고요한 숲속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많던 나무는 보이지 않고 나무가 있던 곳은 밭으로 변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화전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나무를 불태우고 그곳에다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나 나만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두 명의 사내가 자꾸 나를 쳐다보더니 나이거 더 들어 뵈는 사내가 곡괭이로 나를 파내기 시작했다. 졸지에 나는 평화롭게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들은 나를 파내 산 아래로 힘껏 굴려버렸다. 나는 산 아래 사람들이 듬성듬성 집을 지어놓은 골목 어귀 한 구석에 처박혀버렸다. 내가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때는 저녁이었다. 하늘에는 막 샛별이 떠올라 빛나고 있었다. 내 몸 군데 군데에 상처가 나 있었고, 더러 피가 흘렀다가 굳은 자국도 보였다. 나는 샛별을 바라보며 고요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동안 숲속에 안주하며 산 삶이 잘못된 삶이라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산 아래로 내려온 삶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들떴다. 나를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예전처럼 이슬이나 햇살이 아니라 개들이었다. 개들이 처음 찾아와 킁킁 냄새를 맡더니 오줌을 누고 갔다. 어떤 때는 똥을 누고 갈 때도 있었다. 개들은 꼭 나를 찾아와 오줌을 누고 영역을 표시했다. 그다음엔 동네 아이들이 나를 찾아왔다. 아이들도 개들처럼 오줌을 누거나 똥을 누고 갔다. 물론 낙서를 하거나 의자인 양 편안하게 앉아 있을 때도 있었지만 속으로는 그런 아이들이 무척 싫었다. 내 몸은 점차 더러워져갔다. 내 몸은 개 오줌 냄새와 아이들 똥 냄새로 찌들어갔다. 나는 개나 아이들에게 편안한 의자가 되어주거나 재미있는 놀잇감이 되어주고 싶었지만 그들의 똥오줌 냄새로 찌들어가는 나 자신이 무척 싫었다. 그런 가운데 시간은 자꾸 흘러갔다. 나의 삶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개들은 번번이 나를 찾아와 한쪽 다리를 번쩍 들고 오줌을 눔으로써 자신의 영역을 표시했으며, 아이들도 꼭 내 뒤에 숨어 똥을 누고 가곤 했다. 가끔 소나기가 찾아와서 내 몸을 씻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미 질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대로 밤이면 하늘의 별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별을 바라보면서 나는 늘 마음의 평화와 고요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마음의 평화와 고요는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마음에 평화가 왔다 싶으면 어느새 깊은 불안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이대로 세월이 지나면서 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돌덩이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 괴로움은 단순히 괴로움으로만 그치는게 아니라 차라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점차 쓸모없는 천덕꾸러기 바윗돌이 되어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던 개들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고, 아이들조차 이미 나를 잊은 지 오래였다. 그들이 나를 찾아와 똥오줌을 갈기고 가던 지난 날들이 오히려 더 그립게 느껴졌다. 나는 외로웠다. 아무 데도 쓸데없는 무용지물이 된 나 자신이 싫었다. 나는 누구라도 좋으니까 나를 찾아와주기만을 바랐다. 발이 있다면 내가 개들을 찾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찾아와주지 않았다. 아침 햇살도 아침 이슬도, 밤하늘의 달빛과 별빛조차도 웬일인지 나를 비켜서 갔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고귀해 보이는 한 사람이 무심히 내 앞을 지나가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나를 들여다보았다. “으음, 참 쓸만한 돌이구나…” 그 사람은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더니 휑하니 잰걸음으로 사라졌다. 다음 날, 그 사람은 또 나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다른 젊은 일꾼들을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말했다. “어떠냐? 이 돌이. 마침 성전을 건축하는데 모퉁이돌 찾느라 애를 먹었는데, 성전에 쓰도록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것 같지 않느냐? 어서 이 돌을 옮겨 갈 채비를 차려라.” 젊은 일꾼들은 그 고귀한 살마의 말 대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원래 내가 살던 중턱 맞은편 쪽으로 나를 옮겨 갔다. 그곳엔 언제부터인가 성전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외롭게 버려져 더 이상 아무 데도 쓸모없는 줄 알았으나 나는 곧 성전을 받치는 주춧돌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지금 나는 성전의 기촛돌이 된 지 벌써 몇 백 년이 되었다. 몇 백 년동안이나 성전의 지붕을 받치고 있어도 조금도 무겁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내 존재의 기쁨이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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