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시들고 말씀은 영원하다
우리나라에서 꽃은 아직 사치품으로 인식된다. 아마 그 이유는 지속성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겨우 일주일에서 열흘 남짓 가는 절화의 특성 때문에, 꽃은 ‘예쁜 쓰레기’라 불릴 만큼 그 가치가 절하되곤 한다.
그러나 꽃이 내게 주는 매력은 바로 그 짧은 시간에 있다. 찰나의 순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이내 져 버리는 것. 영원할 수 없기에 최선을 다해 피어나는 것. 꽃을 좋아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유한함까지 사랑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꽃을 만지다 보면, 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 순간부터 곧 시들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성경은 풀과 꽃에 빗대어 우리 인생의 유한함을 말씀한다. 우리의 인생은 영원하지 않고, 우리가 붙들고 있는 부귀와 영화도 결국 사라진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사 40:8) 같은 꽃을 바라보면서 나는 아름다움에 먼저 눈길이 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너머의 영원을 바라보게 하신다.
요한복음 6장에서는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 앞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꽃을 만지다 보면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나 완성도, 사람들의 반응 같은 것들에 마음을 쏟기 쉽다. 그런 것들이 내게 기쁨을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은 아니다.
나는 꽃이 시든다는 사실에서 아름다움만 보고 더 나아가지 못했다. 눈앞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두느라 정작 내가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원한 것을 구하는 데에는 힘을 쏟지 못했다.
꽃은 아름답지만 끝내 시들어 버린다. 이 익숙한 사실 앞에서 나는 오늘 무엇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지 묻게 된다. 사라질 것과 영원한 것을 분별하는 참된 지혜가 내게 있기를,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영원한 것을 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