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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story

그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었네

  • 엄태우 목사
  • 4월 27일
  • 3분 분량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얼굴들을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얼굴들을 만나기도 하며 한 사람 안에서 여러 얼굴을 보기도 합니다. 그 얼굴을 보며 환영하기도 했고, 기쁨을 나누기도 했으며 위로를 얻기도 하고 행복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 얼굴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기도 했고 지우려고 애쓰며 외면하고자 고개를 돌리거나 숙이기도 합니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그 얼굴과 내가 그렇게 미워하고 증오하던 그 얼굴은 모두 나의 거울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이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내 얼굴을 베일로 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일을 벗고 나서야 그 거울에 비친 얼굴이 나의 얼굴임을 알게 됩니다. 나는 나를 보고 기뻐했고 놀라기도 했으며 때로는 저주와 비난을 퍼 부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가 변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문제는 이것이라고 신랄하게 분석하며 파고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내가 그 문제로 왜 이토록 고통스러워하고 심지어 두려워하는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나는 왜 그렇게 실망했고 그 얼굴로부터 마치 도망치려는 것 같이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했나… 그것이 정말 해결을 위한 지혜로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C. S. Lewis의 ’til we have faces’를 읽으면서 소설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AI 소설이 아니라 사람이 쓴 소설이 여전히 우리에게 돈이나 먹는 것 이상으로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읽으면서 다른 때와 다르게 참 편한함을 느꼈습니다. 숏폼의 영상을 보는 것과 다르게 적절한 흥미와 동시에 나를 배려하는 오랜 친구를 만난 것과 같은 쉼을 가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듯 책에만 집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얻은 기회였습니다. 5분이 1시간 같고, 1시간이 1분과 같은.

베일로 자신의 얼굴을 덮고 살던 오루알은 신 앞에 가서야 자신의 베일이 벗겨지는 ‘은총’을 받게 됩니다. 베일이 벗겨지는 것은 수치스럽고 나를 나약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림없이 은총입니다. 우리는 수십겹의 베일로 나의 얼굴을 덮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 베일을 벗고 싶으면서도 이것을 벗으면 모든 것을 상실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을 끌어 안고 살고 있습니다.

오루알이 마침내 자신이 프시케 앞에 서면서 같으면서 다른 두 프시케가 서로 마주하고 있음을 보게 되는 일은 C. S. Lewis의 기가막힌 반전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이요,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마주하는 날이 온다면 그날은 참으로 세상의 끝날이요, 새하늘과 새땅의 시작인 바로 그 날일 것입니다. 이 날을 소망하며 고단한 손끝에 다시 힘을 줍니다.

다음은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에서 오루알의 인식이 변화되는 부분입니다. 오루알이 보았던 많은 얼굴들은 그에게 자신을 성찰하며 그가 오랫동안 가졌던 생각과 단단한 체계가 무너지듯 바뀔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이렇게 볼 때 흑암 가운데에서 인생을 사는 것은 분명 예술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얼굴을 찾는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완벽한 영원의 순간을 위해 수없이 반복하는 예술가입니다.


그러나 그 쓰라린 시간들을 다 보낸 후에 나타난 결말은 기묘한 것이었다. 바르디아를 갈망하던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오랫동안 열심히 무언가를 바라보며 살아 보지 안ㅇㅎ은 사람은 수년간 마음을 온통 뒤덮었던 열정이 이토록 갑자기 마르고 시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것이다. 땅에서 자라나는 것들이 그렇듯이, 영혼에서 자라나 최고로 화려한 빛깔을 자랑하고 가장 강렬한 향기를 뿜어내던 것들이라고 해서 뿌리까지 늘 깊은 것은 아닌가 보다. 아니면 세월이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 경우가 그러했다고 생각한다. 바르디아에게 품었던 사랑은 역겨운 것이 되어 벼렸다. 나는 진실의 높고 가파른 꼭대기까지 질질 끌려 올라갔다가 진실이 살 수 없는 허공으로 떨어져 버렸다. 진실은 악취를 풍겼다. 잣진은 아무것도 주지 못하면서 상대방의 것은 전부 차지하려 드는, 상대방을 갉아먹는 욕심, 안싯과 내가 얼마나 그를 고문했는지 하늘이 알 것이다. 그 수많은 밤, 궁전에서 늦게 귀가할 때마다 시기하는 아내 때문에 얼마나 그 집이 괴로운 곳이 되었을지는 오이디푸스가 아니더라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상대방을 전부 차지하려는 욕심이 사라지면서 나 자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까지 거의 다 함께 사라져버렸다. 마치 영혼 전체에 한 대밖에 없던 이가 빠져 버린 것 같았다. 나는 텅 빈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젠 정말 바닥까지 떨어졌으니 신들도 더 이상 더 심한 말로 날 저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일을 벗는 날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참으로 마주하게 될 것이고, 그날 우리는 오해와 아픔을 모두 지우고 나와 같은 너였음을 인정하며 나와 다른 이를, 곧 나를 환영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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