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실패
- 엄태우 목사
- 4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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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주장에 의해 사람들은 빛이 입자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뢰메르에 의해 빛의 속도가 지금과 비슷하게 밝혀지고 빛의 정체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습니다. 우리가 물리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있는 장면 필름에 두 개의 가는 구멍을 뚫고 빛을 통과시키는 이중슬릿 실험이 빛이 파동이라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은 그 다음의 숙제를 만들었습니다. 빛이 파동이라면 그것을 전달하는 물질은 무엇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우주에 ‘에테르’라는 매개체가 있어 빛의 파동을 전달해준다고 믿었습니다.(과학은 합리적인 듯 하지만 의외로 믿는 구석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 에테르가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이 그 다음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마이컬슨과 몰리는 우주가 에테르라는 물질로 가득차있다는 믿음을 전제하고 빛이 전달되는 두 방법을 동시에 사용하여 속도에 차이가 있음을 밝혀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실험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마이컬슨과 몰리는 이 실험으로 노벨상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그 실패한 실험이 ‘빛은 어떤 운동 상태에서 관찰하든 늘 그 속도가 같다는 사실’을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광속 불변의 법칙은 아인슈인으로 하여금 시간을 의심하게 만들어 상대성 이론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빛은 인간이 오랫동안 동경해온 신비로운 대상입니다. 과학자들은 빛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밝히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해 왔습니다. 위에서 말한 실험들은 그 빛에 관한 노력들 중 역동적인 부분의 단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짧은 이야기에서 보듯 그 노력들은 순조롭지만 않았습니다. 마이컬슨과 몰리의 실험처럼 실패한 실험이 오히려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실패한 결과(거둠)일지라도 길게 보면 그것이 누군가에게 다음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실패한 사람은 의도하거나 예상하지 못했지만) ‘심음’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낯설 수 있는 물리학의 내용으로 예증을 드는지 궁금하실 수 있습니다. 꼭 그렇게 하고 싶어서 ‘에테르’에 대한 부분만 5번을 읽었습니다. 그 이유는 실패한 결과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견고한 선입견 때문입니다. 그 선입견에 갇혀 있는 우리의 잘못된 믿음이 제가 5번을 넘게 읽으면서 요약한 에테르에 관한 사실만큼이나 고집과 두려움으로 사무쳐 심음과 거둠에 차질을 빚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심고 거둠에 대해 묵상합니다. 묵상하면서 보니 제가 알던 것보다 많은 횟수로 성경은 여러 곳에서 ‘심고 거둠’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의 별명이 ‘씨와 열매’라는 사실도 새롭게 배웠습니다.
심고 거둠에 있어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줄곧 생각했습니다. ‘내 밭에 내가 심고 내가 거둔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냐 돈이냐’(원래 제목은 사람과 돈) 에서 돈이란 것이 매우 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라 ‘자기 중심성’을 매매를 통해서 매우 극대화 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을 읽고는 ‘심고 거둠’이 ‘내가 심고 남이 거두기도 하며 남이 심은 것을 내가 거두기도 한다’는 사실로 확장 되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인생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심고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탁월하신 지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획 하나가 떨어지는 것보다 천지가 없어지는 것이 쉽다’라고 말씀하심으로 모든 만물이 율법에 근거해서 다스려지고 있음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대로 그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 “다 이루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이 두 가지 진리가 나와 관련이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여전히 내 힘으로 살면서 열심히 정죄 받고 그 정죄 받은 문제를 다시 해결하고자 열심히 애씁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두 가지 말씀을 가지고 볼 때 오늘 나의 실패는 내가 의도한 바에 있어서는 실패가 맞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다른 사람이 이룰 성공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성공적인 심음이 됩니다. 내가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데 나의 실패가 무위로 끝난다면 예수님께서 ‘다 이루려고 했는데 90% 정도만 완성했다’라고 유언을 남기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주간 실패감을 맛보신 분들에게 위로를 드리려고만 하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내가 심지 않은 다른 사람이 심음으로 말미암은 거둠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하시기 위해 교회가 되게 하시고 연결되고 결합되게 하십니다.
세상은 실패와 성공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심고 거둠이라고 하시며 그 심고 거둠의 세계 속에서 살게 하시기 위해서 율법대로 오신 예수님께서 율법을 다 완성하시어 우리의 삶이 서로의 심고 거둠으로 연결되고 결합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심고 거두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제의 실패는 끝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간절한 누군가의 심음이 되며 우리의 실패는 어제 다른이의 눈물로 심겨진 씨앗의 열매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