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좁은 길
- 전지현
- 7월 27일
- 1분 분량
쌀이 떨어졌다.80년대 신파도 아니고..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려 쌀통을 열었는데 쌀이 하나도 없었다. 통장에는 몇 백원. 신용카드를 쓰면 되겠지만 왠지 그래선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편에게 오는 길에 쌀을 사다 달라 부탁하고 혼자 여러 생각을 했다. 내가 예물생활을 잘못했나, 부터 시작해서 어떡하지.. 적금을 깨야 하나 등등.. 주님 제가 뭘 잘못했나요? 알려주세요.. 책임져 주신다며요.. 하며 약간 원망 섞인 기도를 하고 있을 때쯤 딩동-하고 유연언니가 집에 오셨다. 내 사정을 안 언니가 쌀과 반찬 등을 주셨다. 눈물이 났다. 쌀이 떨어진 건 속상했지만 그래서 교회의 은혜를 더 입을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그 뒤로는 모든 것이 감사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그간 시켜놓고 먹지 않았던 것들이 줄줄이 나와 보릿고개를 넉넉하게 넘길 수 있었다. 사치품(?) 같은 요거트나 과일은 먹지 못했지만 그래도 부족함이 없었다. 당연했던 소비가 이제는 하나님의 공급으로 바뀌었다. 예전에 시켜놓았던 계란이 제 때 와서 아이들과 아침밥을 먹을 수 있었다. 계란이 집 앞에 온 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전할 수 있었다. 가난하면 하나님께 구하고 의지하며 주시는 공급으로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기 쉽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을 주셔서 사치하게 하시는 걸까.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좁은 길이다. 차라리 우리가 가난했더라면(절대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신실히 믿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시는 공급으로 만족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굳이 우리가 부요케 되는 그 좁은 길을 가신다. 우리에게 두신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난해야 쉽게 은혜를 아는데도 불구하고 주님은 자신의 이름을 위해 우리가 잘살기를 원하신다. 이번 달, 주님께서 남루한 가난의 옷을 입고 내게 찾아오셨다. 나는 그런 주님을 영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은 부귀를 가지고 태어나셨으나 날 위해 가난 속에서 죽으셨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주님과 함께 앞으로 부요하든 가난하든, 그분과 함께 더불어 먹으며 살고 싶다. 나는 참 행복한 신촌연합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