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nd is where we start from.”(Four Quaters:Little Gidding)
이전에 교회를 다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신촌연합교회에 출석하게 되면 처음 듣는 생경한 말들이 있다고 합니다. 자주 듣는 것 중에 하나가 ‘법리’라고 생각합니다. 보통은 율법, 계명 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데 ‘법리’는 다른 교회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예전에 일본어로 기도메뉴얼을 번역하다가 ‘법리’를 번역할 마땅한 일본어를 찾지 못해 애를 먹은 적도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법리’가 불교의 교리를 가리킬 때 쓰는 단어입니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법리’의 뜻은 법 조항과 판례로 찾게 되는 일정한 원리라고 여겨 집니다. 그것은 현재의 상황을 해석하고 판단을 하는 기준과 권위를 가집니다. 그러니 성경에 적용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과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판례)를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뜻과 선택해야 하는 하나님의 기준을 가리킬 때 교회에서 ‘법리’라는 말을 쓴다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 중심’도 신촌연합교회에서 많이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변화무쌍한 미증유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2000년 전의 성경 말씀을 가지고 길을 찾기 위해 ‘법리’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듯, 도道가 해체되고 마음의 상실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세상에서 ‘하나님 중심’ 또한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도道를 해체하는 일은 과거의 잘못을 용기있게 직시하고 고쳐나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아지는 것보다 잃어버린 것이 많다는 사실이 오늘의 결과가 말해주는 진실입니다. 무엇보다 신앙에서 과거에 우리도 모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겨졌던 부분이 사라지면서 전도서의 말씀처럼 ‘아는 것은 피곤하다’는 흑암의 수고를 더하게 되었습니다. 시대가 변해도 그 풍조를 따르지 않고 진리를 얻고 배우기 위해서 하나님 중심은 하나님 나라의 교두보와 같은 위치입니다. 우리는 흑암에 살면서 하나님 나라라는 빛의 영역에 들어가기 위한 도하 작전을 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한 최후의 보루가 바로 ‘하나님 중심’입니다.
하나님 중심을 알 때 비로소 거꾸로 보이던 것이 바로 이해 됩니다. 예를 들어 흔히 ‘헌금을 낸다’ 라고 말합니다. 편의상 이 말을 쓰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헌금을 ‘받아 주신다’가 진리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러한 의식이 없이 ‘헌금 낸다’ 라고 말하면 할수록 우리는 예물 생활을 하면서 신앙의 마이너스를 축적합니다. 즉 헌금을 내고 있는 자기의를 높여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은 이런 기본적인 개념부터 시작해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게 하는 복음의 신비에까지 이르게 합니다. 우리가 신앙이 자란다는 것은 하나님 중심을 얼마나 깊이 있게 보는 지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칼럼의 제목은 T.S 엘리엇의 사중주에 있는 시구입니다. 번역하면 “끝은 우리가 다시 시작하는 자리다.” 복음의 결말의 저자 모나 후커는 네 복음서(사도행전까지 하면 다섯권의 성경)를 이 한 마디로 요약합니다 : ‘복음서의 끝은 결코 끝이 아니다. 제자도로의 초대요, 시작이다.’ 그는 이 주장을 ‘복음서’라는 성경에서만 쓰인 이 장르를 섬세하게 분석하고 설명하면서 복음서의 각 저자들이 어떻게 이런 주제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지 전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 중심이고, 따라서 당연히 하나님 중심입니다. 하나님 중심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T.S. 엘리엇의 시에서 말하는 ‘끝은 우리가 다시 시작하는 자리다’ 입니다.
성경은 하루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로 종종 말씀합니다. 성경 전체 묻어 있는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입니다. 하나님은 끝에서 새 일을 시작하시며, 하루의 모든 일은 바로 하루의 머리요, 처음인 아침에 ‘압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은 하나님께서 ‘새벽’에 지혜를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아침에 해가 뜨고, 밤에는 별을 보는 것과 같은 일반 은총과 같습니다. 일반 은총은 구원의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절대적이지는 않습니다. 아침에 잠을 자도 다른 것으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원칙에 따라 살 때 우리 삶도 그만큼 복되게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어떤 달력을 보면 일요일이 한 주간의 마지막에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래대로라면 일요일은 한 주의 처음입니다. 끝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기도 한 날이 주일입니다. 그래서 안식일과 겹치는 이미지도 있으면서 동시에 성경의 말씀처럼 ‘안식 후 첫날,’ 여덟번째 날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한 주간이 열리는 하나님 중심이 충만한 주일이 되길 소망합니다.